“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외침을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이 강렬한 전도 구호를 한국 기독교 역사에 각인시킨 인물이 바로 최권능 목사예요. 본명은 최봉석으로, 조선 말기 관리에서 시작해 만주와 한반도를 넘나들며 수십 개의 교회를 세운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어요.
본명 최봉석, 관리에서 유배자로
최권능의 본명은 최봉석(崔鳳奭)이며, 1869년에 태어났어요. 그는 구한말 시기 관리로 일하고 있었는데, 공금횡령 사건에 연루되면서 평안북도 삭주 지역으로 유배를 가게 됐어요. 관리로서의 삶이 무너진 이 사건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어요.
유배지였던 삭주에서 그는 백유계(白留溪)가 세운 삭주교회를 만나게 되고, 그의 전도를 받아 1902년 기독교로 개종했어요. 관리에서 유배자로, 그리고 다시 전도자로 이어지는 극적인 인생 전환이 이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이름에 담긴 의미, 최권능
최봉석이 최권능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전도 방식과 신앙 태도 때문이에요. 그는 복음의 능력을 강하게 믿고 이를 외침으로 전파하는 방식의 전도로 유명했는데, 이런 신앙적 확신과 열정이 그에게 ‘권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만든 배경이 됐어요. 그가 남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이후 한국 기독교 전도 문화에서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어요.
27년간 80개 교회를 세운 전도 여정
최권능은 개종 이후 2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도 활동에 헌신했어요. 만주에서는 12년간 활동하며 50개의 교회를 세웠고, 국내에서는 15년간 활동하며 30개의 교회를 설립했어요. 이를 합치면 그가 생전에 세운 교회는 약 80개에 달해요.
이는 단순히 숫자로만 봐도 한 사람이 평생 이뤄낸 성과로는 놀라운 규모예요. 특히 만주 지역은 당시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해 있던 척박한 환경이었는데, 그런 곳에서도 꾸준히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조직해냈다는 점에서 그의 전도 활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커요.
박형룡 박사에게 미친 영향
최권능의 전도 활동은 개인의 신앙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대표적으로 한국 장로교 신학의 큰 축을 이룬 박형룡 박사가 그의 전도를 통해 회심한 것으로 전해져요. 박형룡 박사는 이후 한국 기독교 신학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에, 최권능의 전도가 단순히 한 개인의 회심에 그치지 않고 한국 신학사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남겼다고 볼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의 순교와 순교기념비
최권능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의 지조를 지킨 인물로도 알려져 있어요. 이런 저항적 신앙 활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렀고, 결국 1944년 세상을 떠났어요. 해방 이후 그의 신앙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1946년 봄, 그가 활동했던 산정현교회에서 순교기념비를 건립했어요.
이 기념비는 지금까지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 인물들을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어요.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역사적 배경
일제강점기 후반, 조선총독부는 각급 학교와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어요.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현실적인 압박 속에서 신사참배에 응했지만, 최권능을 비롯한 일부 신앙인들은 이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끝까지 거부하는 길을 택했어요. 이런 저항은 개인의 신념을 넘어 신앙 공동체 전체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받아요.
신사참배 거부는 당시로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선택이었어요. 실제로 많은 거부자들이 체포되고 옥고를 치렀으며, 최권능 역시 이 과정에서 고초를 겪다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한국 기독교가 겪은 시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돼요.
예수천당 불신지옥 구호의 확산
최권능이 외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짧고 강렬한 문구 덕분에 전도 현장에서 빠르게 확산됐어요. 복잡한 신학적 설명 없이도 핵심 메시지를 즉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 여러 전도자들이 이 구호를 인용하거나 변형해 사용하게 됐어요.
이 구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서 길거리 전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고,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문구로 널리 알려지게 됐어요. 한 개인이 만들어낸 표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대중문화 속에서도 회자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산
최권능이 외쳤던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지금도 한국 기독교 전도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격동의 시대에 관리에서 유배자로, 다시 전도자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며 80개의 교회를 세운 그의 생애는 한국 근대 기독교사에서 독보적인 사례로 남아 있어요.